Opinions I July 3, 2023 I Written by 권오윤 이사
‘1999년 끝날까지도 곁에 있겠어’
1997년 최대 히트곡 중 하나였던 지누션의 ‘말해줘’의 가사이다. 2000년이 되면 컴퓨터의 오류, 소위 ‘밀레니엄 버그’로 인해 전세계에 재앙이 올 것이라는 설과 함께 종말론이 은연중에 퍼져 있던 시기였고, ‘1999년 끝날’이라 는 표현은 ‘이 세상 마지막 날’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아무튼 네자리수의 연도 중 맨 앞 숫자가 바뀌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하기 직전이었다.
종말론의 한편에는 완전히 새로운 새 천년에 대한 기대도 팽배했다. 당시 인류가 경험했던 일들은 다음과 같다.
- 얼마 전 탄생한 인터넷은 윈도우스95의 출시와 함께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 플레이스테이션은 실제같은 게임세상을 구현했고, 영화 매트릭스는 지금의 ‘메타버스’를 연상시키는 파격적 세계관을 선사했다.
- 야후, 인텔 등 실리콘 밸리의 모든 기술주들의 주가가 비정상적으로 상승했다.
인류는 전세대가 지금까지 살아보지 못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강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미래에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들은 ‘IT’와 사랑에 빠졌고 낙관적 미래주의 (Future Optimism)가 고조되고 있었다.
‘Y2K 문화’는 그런 미래주의의 토대 위에, 전세계적으로 문학, 음악, 미술, 패션, 그래픽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1997년 부터 2004년까지 이어졌던 메가트렌드를 지칭한다.
20년만의 Y2K!
많은 평론가들이 대중문화에서 Y2K의 신호탄을 날린 아이콘으로 영국출신 걸그룹 ‘스파이스걸스’를 지명한다.
당시 전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던 5명의 멤버들은 톰 포드와 칼 라거펠트 같은 디자이너의 뮤즈 역할을 하며 Y2K 스타일의 초석을 만들었다. 뒤이어 벨벳 트랙수트를 선보인 패리스 힐튼은 Y2K 패션의 여왕으로 등극한다.
플랫폼슈즈, 나비모양 클립, 반다나, 커다란 후프 귀걸이, 일명 골반바지 등이 당시 대유행했던 아이템들이다.
[왼쪽부터 ①Y2K의 뮤즈, ‘스파이스걸스’, ②벨벳 트랙수트로 Y2K 패션의 여왕으로 불렸던 ‘패리스 힐튼’,③일명 ‘골반바지’를 착용한 ‘데스티니스 차일드’]
결론을 얘기해보자!
그렇다면 기업들은 이 ‘Y2K’ 경향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물론, 맹목적인 트렌드의 추종으로 브랜드의 본질을 훼손해선 안 되겠지만, 그저 일시적인 유행이라 치부하며 흘려버릴 일만은 아니다. 트렌드를 포착한다는 것은 시대를 관찰하고, 동시대인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대부분의 위대한 브랜드들이 그러했듯이, 그 시대의 감성으로 소비자들과 교류한다는 뜻이다. 당신 회사의 홈페이지 개편, 카탈로그 제작은 시대와 소통을 하는가? 아니면, 대표님의 취향에 묶여 있는가? 그저 시대에 대한 관찰마저 귀찮아하는 것은 아닌가?
당시 패션은 보다 직설적으로 ‘미래주의’를 표현하기도 했다. 매트릭스의 여주인공 ‘트리니티’가 착용한 인조가죽은 Futuristic Aesthetics (미래미학)의 중요한 플래그쉽 역할로 파생되는 다양한 미래 스타일을 이끌었다.
[미래미학을 제시하는 패션, 왼쪽부터 ①매트릭스의 트리니티, ②TLC의 No Scrub 뮤직비디오,③엄정화의 ‘몰라’ 쇼케이스]
제품디자인 분야에서도 ‘새로운 것’들이 속출했다. 기술과 스타일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1998년 iMac은 반투명한 플라스틱 재질의 불뚝한 프로필로 등장했다. 소재 분야의 기술은 플라스틱을 저급한 재료가 아닌 새로운 주류로 이끌었다. 플라스틱을 활용한 다양한 디자인적 시도가 소형 아이템부터 가구에까지 시도되었다.
[Y2K 인더스트리얼 디자인, ①당대 제품디자인의 아이콘으로 등극했던 1998 iMac,
②2002년 출시된 나이키의 디지털 클리어 브레이슬릿, ③반투명 플라스틱 소재의 의자, Compamia 제품]
하지만, 어느 곳보다 다양한 해석과 시도가 넘쳐났던 분야는 그래픽 디자인 분야였다. 1990년 대 초, 영국 셰필드에 있던 디자인 스튜디오 ‘the Designers Republic’ (tDR)은, 자신들의 스튜디오 이름의 새로운 디자인 쟝르를 개척하며, 훗날 Y2K 그래픽 디자인으로 회자될 다양한 그래픽 디자인 경향을 이끌었다.
빠르게 업데이트되는 당대의 IT 기술을 빠르게 수용하고 디자인적인 해석과 메시지를 세상에 던졌으며, 당시 소개되었던 다양한 일렉트로 뮤직의 아트워크 등은 ‘현대미술박물관 (MOMA)’과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 (V&A Museum)에 영구 전시되고 있다. 밀라노의 가구/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인, ’멤피스 그룹’도 tDR 못지 않게 Y2K 그래픽의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소위 ‘멤피스 디자인’이라는 조류를 만들며, Candy Bright (캔디 브라이트)라 불리는 컬러 팔레트를 세상에 소개했다. 네온 핑크, 블루, 오렌지 등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색의 조합이 시대의 대세로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었다.
당시 일반인들이 가장 많이 접했던 그래픽 디자인은 무엇이었을까? 당연히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스 화면이었을 것이다.
스위스의 디자이너 아드리안 프루티거가 개발한 윈도우스의 테마디자인은 그야말로 당시 그래픽 디자인을 홀로 대변하고 있었다. ‘프루티거 아에로’라는 이름의 스타일은 유리 느낌의 경계선과 반짝이는 슬레이트 테마는 훗날 이어지는 인터페이스 디자인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Y2K 그래픽을 형성했던 디자이너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①빅토리아&앨버트 뮤지엄에 영구 전시되고 있는 ‘디자이너 리퍼블릭’의 ‘Very Metal Noise Pollution’,
②캔디브라이트라는 컬러 팔레트를 선보인 멤피스 디자인, ③프루티거 아에로 스타일의 윈도우스 테마 디자인]
위에 열거한 Y2K 트렌드가 20년만에 패션, 음악, 미술, 디자인 등 전 분야에 걸쳐서 돌아왔다. 작년말부터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어딜가나 Y2K가 대세이다. Y2K의 이름 하에 적용되는 테마들 중 몇가지를 소개한다.
1. Vaporwave
Vaporwave 패턴은 멤피스 그룹의 ‘캔디 브라이트’ 컬러 팔레트를 그래픽에 적용한 사례이다. 전혀 자연스럽지 않은 색상들의 조합으로 트로피컬한 감성인 동시에 미래의 랜드스케이프를 표현하기도 한다.
2. 3D Effect
당시 그래픽 디자인에는 3D 효과가 많이 쓰였다. Blobitecture라 불리는 기하학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아메바 형태(?)의 형상들이 3D로 구현되었다. 이 역시 ‘미래’라는 개념을 감성적으로 풀어내는 시도였다.
3. Y2K Fonts
이전에는 없었던 유형의 서체들이 나타났다. 당시 유행했던 테크노 음악의 앨범 표지에 등장할 법한 ‘테크노’, ‘사이버’ 등의 이미지가 사람들의 인식 속에 생겨났다. Blobitecture와 마찬가지로 비기하학적 형태의 글씨들이 미래, 또는 외계에서 온 메시지처럼 느껴졌다.